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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ings

비누상자 경주

지난 토요일 비누상자 경주(soapbox racing)가 열렸습니다. 상자 모양의 차체에 바퀴를 달고 한껏 개성있는 장식을 붙인 후 사람을 태우고 언덕을 달려내려가는 경기로, 예전 미국의 비누 상자가 나무로 만들어진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는군요. 사람이 많이 모인 장터 같은 장소에서는, 비누 상자가 즉석 연단의 역할도 했다고 하니 나름 오랜 역사를 가진 데다 쓰임새도 많은 물건인 것 같습니다.


보름 전부터 시내 곳곳에 대회를 알리는 배너가 걸렸습니다.




대회 전날, 도로를 막고 짚단으로 경주로를 만들더군요. 실제 자동차 경주에서는 타이어 더미 등을 사용하는데, 엔진이 없는 상자다 보니 이 정도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대회의 주최인 레드불의 차량이 부지런히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한국의 피로회복제와 비슷한 맛의 음료인데, 가격이 $2 정도이니 꽤 비싼 편이지요.



동네 방송국의 카메라도 대회 전날 이미 준비를 완료하였습니다.



마침내 대회의 시작. 아침부터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평소 한산하던 길인데, 어디서 이렇게 모였는지 말 그대로 발디딜 틈조차 없더군요.





위험을 무릅쓰고 좁은 담 위에 올라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의 참가 팀들. 여러 학교와 지역에서 왔더군요.



경주는 구불구불한 길 400m를 따라 내려가는 방식입니다. 먼저 출발선에서 팀 소개와 함께 장기자


랑을 잠시 하고 한두 명이 탑승한 후 내려가더군요. 이 팀은 알에서 닭이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더


니 출발했습니다.





워낙 사람이 많이 몰리다 보니 곳곳에 카메라와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한 팀 한 팀 언덕을 달려 내려옵니다. 기록도 기록이지만 독창성과 재미 등을 비롯한 쇼맨십으로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다 보니 온갖 아이디어가 백출하더군요.












내려올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하며 즐거워합니다.







한쪽 구석에서는 맥주를 나누어 주더군요. 서른 다섯 이하로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신분증 검사를


하겠다는 문구가 재미있습니다.



한 팀이 내려오면 다섯 명의 심사원들이 점수판을 들어 결정합니다.



겨울이 오려는 이곳에서 아주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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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금상

1983년의 어느 백일장에서.

이 신문을 다시 구하려고 한참을 수소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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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건너다

휴대폰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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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가을이 오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 가운데 하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이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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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산 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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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언덕

저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땡땡거리는 전차가 가끔 지나가는 풍경.

나는, 그곳에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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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어제 날짜로 실린 논문입니다.

미국에서 했던 연구내용을 담고 있지요.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이름이 실리니 신기하군요.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Adobe Reader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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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갑시다 5 6

파리 개선문과 하코네 산악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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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 3

2004년 봄에 태광이엔시란 회사에서 사명을 바꾼다고 해서 로고와 함께 공모를 하길래 응모했더니, 결국 사명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고 해서 좌절. 아래는 그 회사에서 쓰이고 있는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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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 2

작년 초에 있었던 서울산업통상진흥원 로고 공모에 냈던 것. 언제쯤 한번 되어 볼까… 아래는 현재 쓰이고 있는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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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피츠버그에 있는 동안 잠깐 일했던 내용이 논문으로 나왔습니다. Nanoletters란 학술지인데, ‘이 바닥’에선 꽤 유명하다는군요.

제 이름이 3페이지에 한번 더 나옵니다. ^^

전문 다운로드(pdf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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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통화

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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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갑시다

Going Forward≫
1편 요세미티의 동굴터널

2편 록키산맥

3편 데스밸리

4편 안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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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팀 로고

회사의 분석팀이 UL로부터 인증을 받으면서 사용할 심볼마크과 워드타입 제작을 의뢰해 왔다.

The All-Seeing Eye  모든 것을 보는 눈

Analytical Tech Center가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를 ‘모든 것을 보는 눈(the all-seeing eye)’으로 표현하였다.
눈의 형태를 이니셜 a와 결합하여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심볼은 최고의 분석 기술력을 상징한다.
Red는 고객에 대한 열정과 적극적인 문화를, Blue는 탁월한 워크플로우와 완벽한 시스템을 나타낸다.
컬러 시스템은 그룹 CI와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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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 1 / 한겨레

지난 초여름에 있었던 한겨레 제호 공모전에 냈던 것. 나름 ‘새(鳥)체’라는 글꼴까지 만들어 제출했는데 똑 떨어지고 -정말 새가 되고- 말았다. 너무 모자람이 많으니 뭐라 할 말도 없었다. 다음은 당시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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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well

[번  호] 18369 / 18404    [등록일] 2001년 10월 30일 01:33      Page : 7
[조  회] 294 건
[제  목] 행복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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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그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함께 앉아 담소를 나누곤 했던 익숙한 창가, 그곳에 다시 함께 가는 게 껄끄럽지는 않을까 잠깐 걱정도 했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뿌옇게 햇살이 내리비치는 그 창가에서 나는 싸한 현기증을 느꼈다.
나는 옛날 그 철없던 시절처럼 잦은 웃음을 터뜨리며 떠들고 있었고, 그도 옛날 그 철없던 시절처럼 두 손을 턱에 괴고 살며시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하루밤을 꼬박 말해도 웃으며 들어줄 것 같던 예전 모습 그대로, 그렇게 날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뭐가 잘못되어 2년 전 그 때로 돌아가버린 건 아닐까 하는 착각에 핸드폰을 열어 슬며시 날짜도 확인해 봤다.
2001년 10월 29일.
그와 나는 아직도 99년 가을에 머물러 있는데 시간은 이렇게 훌쩍 우릴 넘어와 버렸구나…

따뜻한 차 한 잔을 함께 마시고 창가에 그늘이 드리워질 무렵 우리는 다시 익숙한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러고 나면 또 안녕일까… 가슴이 아렸지만 내색조차 할 수 없었다.
오래도록 미워했던 사람. 철없던 대학 신입생 무렵에 그는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았던 사랑이었다. 풋내기 꼬마에게는 한참이나 높아보이던 듬직한 산 같던 사람.

어느 가을 오후에,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담소를 나누고 일어서며 마치 내일 또 볼 사람처럼 태연하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커피잔을 쓰러뜨려버렸으면서도 나는 끝내 왜냐고 묻지도, 한바탕 울지도 못했다.
이별의 순간엔 그 사람처럼 담담해야 하는거구나, 그렇게 처연해야 하는거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에 백지가 되어버린 머리를, 까맣게 재가 되어버린 마음을 추스렸다.
정말 내일 또 볼 사람처럼, 그러고도 그 사람은 웃었었다.
너무 아프고 시려, 웃는 그 사람을 바라보기조차 힘들었으면서도 나는 그를 보고 그와 똑같이 웃으려고 노력했다. 입술을 지긋이 다물고 온화한 표정으로… 그렇게.
여느때처럼 날 바래다주던 그의 차에서 내려 태연한 척 뒤로 돌아 집으로 걸어갔지만, 나는 그 때 혹시 격한 울음에 떨리는 뒷모습을 그가 알아차릴까봐 걷는 것조차 힘들었었다.
1년을 설레며 사랑한 사람은 그렇게 나를 떠나가버렸다.

이젠 감정은 다 버리고 기억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리에서 일어서서 밖으로 향해 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말로 못할 안타까움에 가시밭을 걷는듯이 아팠다.

오늘은 내가 그를 바래다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데려다 주겠다는 내 말에, 그는 가볍게 한번 사양했을 뿐, 말없이 앞장서는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공항까지 가는 그 긴 시간동안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먼 길을 왔다 가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치 조촐한 그의 가방만 원망스레 바라보며, 나는 그렇게 한참을 더 달렸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차분히, 그러나 슬프게, 떠날 시간이 임박해서야 그가 들려준 얘기.
혹시나 자신의 주위 환경에 내가 이유없는 고통을 받아야 할까봐, 슬프게 헤어지자 하면 내가 다 감당하겠다고 맘아프게 굴까봐 그렇게 태연한 척 안녕을 말해놓고 많이 힘들었단다.
모질게 마음먹고 공항으로 향하던 날, 이건 아니다 싶은 강한 생각에, 배웅해 주던 사촌누나를 졸라 학교로 길을 틀었단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욕심을 부려볼 각오로 그렇게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은행잎 그득한 사이를 웬 남자와 다정히 걸어나오는 나를 봤단다. 팔짱을 꼭 끼고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다른 사람을 향해 웃어주는 나를 봤단다.
그리고… 자기가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쓸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다시한번 모질게 돌아섰단다.

“그래도 나 때문에 오래 힘들어 하지 않아서 다행스러웠다… 우리 꼬맹이… 이젠 꼬맹이도 아니지만… 후후… 가끔은 우리가 만나지 말았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들더라. 많이 아팠는데, 나 아픈만큼 너한테도 내가 상처일까봐 걱정 많이 했다.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아 다행이네… 너, 죽을 때까지 못잊을거다… 아마 그럴거야…… 너, 어디 아프다고 징징대는일 없이 건강하게 지내야 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그냥 피식 웃었다. 기억속의 예전 그 사람 웃던 모습을 흉내내며 온화하게.
‘이젠 내가 이렇게 해 줄 차례야’ 하고 마음을 매질하며 담담한 듯 웃었다. 꼭 예전 그 사람처럼.

2년 전 그 가을에, 강의실에서 와르르 몰려나오다가 저 편 도로에 서 있는 고급 승용차와 그 앞에 선 그, 그리고 그의 옷깃을 어루만져 주는, 나완 비교도 안되던 여자를 보고 내 가슴이 얼마나 철렁했었는지 나는 얘기하지 못했다.
사랑은 자유로운 거라고 늘 말하던, 그의 새 여자라고만 생각하고 갑자기 눈시울이 뻘개지도록 서럽게 느꼈던 배신감도 나는 얘기하지 못했다.
자신을 빨리 잊게 하려는 그의 모진 배려라고만 생각했었다는 얘기도, 괜시리 친하게 지내던 동기놈에게 팔짱을 끼고 연인처럼 굴며 나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하고 잘 사는 양 보이고 싶었단 얘기도, 하지 못했다.

내가 미처 다가가기도 전에 휙 돌아서서 차에 타버리는 모습에, 아무리 미워도 가까이에서 한번이라도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한심하고 미워서, 그렇게 망설임도 없이 가버린 그가 너무 원망스러워서, 시야에서 승용차가 사라지자마자 동기놈을 붙들고 엉엉 울어버렸단 얘기도… 나는 끝내 삼켜버렸다.

“행복하셔야 돼요. 꼭… 그래야 돼요.”

아주 예전에, 우리가 처음 봤을 때처럼, 그는 가만히 날 보다가 내 머리를 쓰윽 쓰다듬었다. 나도 이젠 어엿한 아가씨가 됐는데 여전히 그에게는 꼬마인 것처럼… 특유의 그 씩 하는 웃음을 웃어 보여주고 그는 내게서 등을 돌렸다.

손을 흔들어 줬다. 담담히. 옛날 그 사람처럼.. 담담히.
이게 아마 우리의 영원한 안녕이겠지. 그는 다신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거고, 다신 날 찾지 않겠지…

나는 사랑에 서툴렀고, 너무나 철이 없었고, 세상물정 하나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어린아이였고…
그는 사랑에 너무 익숙했고, 자신의 찬란한 배경이 내게 어떤 상처를 가져다 줄 지도 익히 알고 있었던 어른이었다.

그가 내 스무살의 자유로움을 이해하고 지켜주고 싶어 사랑은 자유로운 거라고 말할 때, 나는 그 사람이 오랜동안 구속받고 싶어 하지 않아서 하는 얘기인 줄로만 알았고, 그가 내가 잡아주길 원하며 떠나겠다 했을 때, 나는 내가 더 이상 잡지 않길 바라며 헤어지자는 줄 알았다.

아직도 덜 큰 철없는 숙녀가 모진 세상에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안녕이라 말해준 것을, 나는 버려짐으로 해석했었다.

그 때만큼은 아이처럼 그러지 말자고 졸라도 됐을 것을…
왜 하필 그 순간에 철이 들어버린 건지…

집으로 가려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내려서 학교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때 그 강의실, 그 길 앞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사잇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그 사이에 비치는 그 사람의 환영이 너무 가슴이 아파 터벅터벅 발걸음을 돌렸다.

잘 가고 있나요 내 사랑.
원망스럽고 미워서 그 이후론 단 한번도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던, 내 소중한 사랑.

난 그 후로 아무도 만나지 못했는데… 당신은 영영 그걸 모르고 살겠죠…
철없던 꼬맹이가 그저 스치듯 좋아한 사람일 뿐이라고 그렇게 피식 쓴웃음을 베어물고 말아버리겠죠…
마음이 너무 아파 오늘을 후회하는 나를… 당신은 영영 모르고 살겠죠…

행복해야 해요… 정말 행복해야 해요…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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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귀가

집으로 돌아오던 마지막 발걸음.

매일 오가던 골목과 거리와 학교.

나의 1년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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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의 덴버

미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 잠깐 시간이 생겨 여행을 떠날 작정을 했습니다.

동부와 서부의 어지간한 곳은 다 가 보았으니,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남쪽 지방 유람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지요. 여러 개의 섬이 다리로 이어져 있다는 플로리다의 키 웨스트, 재즈의 고향 뉴 올리언즈, 그리고 카우보이의 정취가 가득한 텍사스를 목적지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플로리다와 루이지애나는 허리케인 캐트리나의 대습격으로 쑥대밭이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접었지요. 결국 텍사스행을 결정하고 항공권까지 모두 구입해 두었습니다. 더군다나 텍사스에는 유치원 때부터 20년 넘게 지내 온 친구가 유학중이라 오래간만에 볼 수 있어 무척 기대가 되더군요. 친구는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도, 호텔 예약까지 마쳐 두어 무척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초대형 허리케인 리타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진로를 텍사스로 정확히 맞추더군요. 출발하기로 한 날 새벽까지 공항에 갈까말까 고민하다 결국 귀국에 영향을 줄까봐 여행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아쉽던지요. 리타는 별 피해 없이 스멀스멀 사라졌고, 텍사스에 가 보지 못한 안타까움은 아직도 무척 큽니다.

결국 사촌누나 부부가 있는 덴버로 방향을 바꾸어 마지막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전에도 한 번 가 본 곳이긴 하지만, 가을의 덴버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록키산맥에 단풍이 시작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지요.

출발날짜 직전에 급히 표를 구하다 보니 어메리카 웨스트 항공이라는 회사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저가 항공사인데, 설립된 지 20년이 넘었으니 나름대로 역사가 있는 회사입니다. 진작부터 부도상태이던 유나이티드와 US 에어웨이스에 이어 얼마 전 노스웨스트와 델타까지 모두 부도의 길을 걷게 된 최근의 상황에서 잘 버티고 있더군요. 마침 이날, 어메리카 웨스트 항공이 US 에어웨이스를 인수하게 되어 안내방송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어메리카 웨스트 항공은 네바다주의 라스 베이거스를 본거지로 한 회사라 대부분의 항공편이 라스 베이거스를 거쳤다 가게 됩니다. 세계 도박의 중심지답게, 공항 내부에도 어딜 가나 슬롯 머신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길에는 추워지는 날씨를 피해 아래로 내려온 엘크 무리들이 어슬렁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산은 조금씩 가을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곡류를 뒤로 두고 높이 올라가 보았습니다. 침엽수림이 빽빽하더군요.

정상에 다다르자 곳곳에 얼음이 보였습니다. 식물조차 살기 힘든 척박한 곳이더군요.

아름다웠던 그곳, 언제 다시 가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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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back home

돌아왔습니다. 한해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낯선 것도 있고, 바뀐 데도 많군요.

 

드넓은 미국땅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고 그보다 더 깊이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총맞지 않고 귀국했지요.

 

미국에서 도움주신 두 분의 한국인과, 실험실의 重樹, Daniel 등에게도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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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위반 통지서

막판에 이런 걸 받다니.

학교 근처에 차를 댔는데 주차미터가 고장나 있어서 고장이라 써 붙이고 들어갔다 나오니 어느새 미터기는 고쳐져 있고 이런 게 차창에 나풀거린다.

미국생활 1년간 이런 과태료만 통산 57달러!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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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eu

세상의 일이란 어떤 것이든 간에 언젠가는 끝이 나게 마련입니다. 들어갈 때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이던 고등학교나 군대에서의 몇 년도, 결국 시간의 흐름 앞에서 모두 과거지사로 변했지요. 학창시절 마지막 소풍날이나 오래전 그 사람과의 마지막 입맞춤처럼, 자각하지 못하는 시작과 끝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어느새 피츠버그에서 한 해를 꼬박 보냈습니다. 고마운 분들의 희생과 도움으로 미국행이 결정되던 때의 느낌이 여전한데, 벌써 다시 가을이군요. 피츠버그에 도착해 선배 집에서 막막한 미국생활을 시작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오자마자 갑자기 몰아닥친 이른 추위 때문에, 침대도 없이 바닥에서 덜덜 떨며 잠을 청하던 밤이 있었지요. 하나하나 세간살이를 갖춰 나가며 조금씩 적응하던 늦가을과,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던 눈에 지쳐가던 겨울도 떠오르는군요. 늘상 흐리고 눈비가 내리는 날씨는 왜그리 짜증스럽던지요. 새 집에서 봄과 여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피츠버그는 쉽게 정을 붙이기가 어려운 동네입니다. 특별히 가볼 만한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궂은 날씨도 사람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그 옛날 세계를 주름잡던 철강산업이 사라지고 난 다음, 나날이 위축되는 형편과 자연의 오염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 그리고 여기서 배운 것들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요.

귀국을 보름쯤 앞두고, 포인트 스테잇 파크에 다녀왔습니다. 앨리게니강과 머농거힐러강이 만나 오하이오강이 생기는 곳에 자리한 공원이지요. 세 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잡은 피츠버그에는 다리가 많이 놓여 있습니다. 1965년 차관을 얻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곳을 둘러보며 포항제철과 한강교량 건설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이 곳은 18세기 중반, 프랑스와 영국군이 오하이오 계곡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1754년 프랑스군이 인디언과 함께 이곳을 점령하고 포트 듀퀘인이라는 요새를 세우자, 당시 버지니아의 영국군 지휘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탈환을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 참패를 당한 곳이기도 하지요.

이듬해에는 조지 브래독 장군이 기습했다가 또한번 패배를 맛보았을 만큼, 당시 이곳은 프랑스의 세력이 아주 강했습니다. 결국 1758년 존 포브스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치면서 영국군이 차지하게 되었다는군요. 지금도 피츠버그에는 듀퀘인, 브래독, 포브스라는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은 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1950년대 초반까지 슬럼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다 약 30년간의 설계와 공사를 거쳐 1974년 공원으로 탈바꿈했다는군요.

공원 안에는 잔디밭이 있어 눈을 시원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분수입니다. 1분에 3.8톤의 물을 45m 높이까지 쏘아올려 3개의 강을 상징하는 3개의 분수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건너편 워싱턴산에는 유명한 인클라인이 오르락내리락하지요.

강 건너편에는 풋볼팀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경기장인 하인즈 필드와 카네기 사이언스 센터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다운타운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몇 개 없는 지하철 역도 새롭게 보이더군요.

살아가면서 앞으로 다시 피츠버그를 방문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행보가 어쩌면 죽는 날까지 이 도시에 남긴 마지막 발걸음이 될 수도 있겠지요.

매일 문을 열고 드나들던 현관, 얼마나 눌렀을지 모르는 엘리베이터의 버튼, 그리고 복도까지도, 모두 마지막이로군요. 낑낑대며 침대와 책상, 가재도구를 나르던 이삿날, 그리고 먹을거리를 잔뜩 사오던 주말도 이젠 모두 다시오지 않을 추억으로 담아야지요.

평생 잊지 못할 피츠버그에서의 생활이 끝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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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일년

see you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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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나는

憂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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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탑 테일스

서양에서는 도시나 건물, 거리와 공항 같은 곳에 기념할 만한 사람들의 이름을 붙여 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적 기업도 창업자의 이름을 딴 사례가 심심치 않게 보이고요. 학교에 건물을 지어 기부하거나 거액의 장학금을 기탁했을 때에도 어김없이 그 사람의 이름이 남게 됩니다. 좀 더 중요하거나 위대한 인물이다 싶으면 기념탑이나 공원, 혹은 기념관을 따로 세워 주지요.

이 뾰족한 170m 높이의 오벨리스크는 초대 대통령 워싱턴을 기념하기 위한 탑입니다. 수도 특별법에 따라 워싱턴 DC에는 이보다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이 탑은 1833년 워싱턴 기념탑 사업회가 조직되면서 건립이 구체화됩니다. 다른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설계 공모를 통해 로버트 밀스의 제안이 선정되었지요.자금 부족 탓에 공사는 1848년 독립기념일이 되어서야 시작이 되지만, 결국 1854년에 예산이 다 떨어져 46m만 쌓아올린 채 공사가 중단되고 맙니다. 이후 여러 차례 모금을 했지만, 90달러도 되지 않는 돈이 모였다는군요. 특히 조지 워싱턴의 고향 버지니아에서는 겨우 48센트가 걷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교황이 공사에 쓰라고 보낸 돌이 탈취당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1876년 탑이 완공되었고 1888년부터는 일반에 개방되었습니다. 도중에 공사가 중단되는 바람에 아래쪽 1/3 부근을 경계로 색이 달라지는 걸 볼 수 있지요. 여기에 들어간 벽돌이 3만 6천 여장이나 된다고 합니다. 무게는 9만 여 톤이고요.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데, 900칸짜리 계단도 있다고 하더군요. 입장은 무료이지만 인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가서 표를 구해야 합니다.

워싱턴 날씨는 무덥기로 악명 높은데, 한참을 땡볕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답답하더군요. 벤치가 탑 주변에 둘러 있기 때문에 그늘진 곳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시간대별로 입장하는 줄의 위치가 정해져 있어서 30분 정도는 자리를 잡아야 빨리 들어갈 수 있습니다.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면 몸과 짐을 수색하고 나서 보안수칙을 들어야 하는데, 흑인 경비원이 무척이나 고압적이더군요. 무슨 군대 유격조교를 데려다 놓은 줄 알았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는 워싱턴 동상이 있습니다.

금색으로 번쩍이는 엘리베이터의 문.

후다닥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천장을 보면 벽돌을 어떻게 쌓아올렸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네 방향으로 창이 나 있어서 워싱턴 DC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백악관을 비롯해 각종 정부건물과 기념관들이 보이더군요.

관람이 끝나면 다시 내려갑니다. 도중에 잠깐 멈추는 동안, 다른 나라들과 각 주에서 보내 온 벽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향 버지니아에서는 돈은 얼마 내지 않은 대신, 최상급을 남발한 벽돌을 보내왔더군요.

다시 밖으로 나오니 스프링클러가 더위를 식혀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일본의 경우는 ‘토요타’나 ‘혼다’, ‘마츠시타’와 같은 예가 꽤 있습니다만 한국은 인명이 지명이나 사명에 들어가는 경우는 몹시 드문 편입니다. 내세우는 것을 꺼리는 겸양의 문화 때문일까요, 아니면 남 잘되는 걸 못보는 시기심 탓일까요.

물론 한국에 ‘테헤란로’나 ‘파리공원’ 같은 외국의 지명을 딴 곳은 존재하지요. 하지만 가뜩이나 강한 배타적 민족주의가 점점 거세어지는 요즘의 분위기에서는, 앞으로 어떤 움직임이 벌어질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로스 앤젤레스에서 마주친 이정표가 떠오르는군요.

이 인터체인지 외에도, 로스 앤젤레스의 한 우체국 이름이 ‘도산 안창호 기념 우체국’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이앤 왓슨이란 하원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통과된 덕분이지요.

아, 그러고보니 혹시 ‘지역구의 한국인 표를 얻으려는 수작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는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http://www.house.gov/apps/list/press/ca33_watson/pr_0504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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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집 이야기

TV에서 미국과 관련된 뉴스가 나오면 보통 백악관이 등장합니다.널따란 잔디밭 한가운데 솟은 하얀 집은, 규모 면에서는 별로 크지 않지만 최강의 권력이 뿜어져나오는 장소라는 점에서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지요. 백악관은 1790년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연방 정부의 위치와 규모를 규정하는 법률에 서명함으로써 그 역사가 시작됩니다.

건국 당시의 미국은 영국과 대립 관계에 있었으므로 자연히 유럽에서 프랑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지요. 미국의 독립전쟁 자체가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 데다가, 전쟁 당시 프랑스는 영원한 경쟁자 영국과 맞서 싸우는 미국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수도 워싱턴의 위치 선정과 기본적인 설계 역시 프랑스인 건축가 피에르 샤를 렝팡이 맡았는데, 지금도 워싱턴 DC에는 렝팡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200여년 전 그 당시에도 관급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경쟁을 치열했던 모양입니다. 대통령의 공관을 모집했더니 9개의 제안서가 접수되었는데, 결국 아일랜드 출신의 건축가 제임스 호번의 작품이 당선되었습니다.

마침내 1792년 10월에 공사가 시작되었고, 대통령 워싱턴은 자신이 살게 될 집의 공사를 직접 점검하곤 했다는군요. 하지만 대충 완공이 된 1800년에 워싱턴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1799년에 사망하지 않았다 해도, 1797년에 퇴임을 했으니 백악관에서 살 수는 없었겠지요.

이후로 백악관은 여러 대통령을 맞으면서 조금씩 구조가 변경되어 왔습니다. 132개의 방이 있는 이 건물은 두 차례의 화재에도 버티어 내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쓰이고 있습니다.

건물 내에 화장실은 35개가 있고, 412개의 문과 147개의 창문이 있다는군요. 백악관 관광은 테러 이후 까다로워져서 여러 달 전에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또 하나의 하얀 건물은 의회 의사당입니다. 백악관과 혼동하는 분이 가끔 계시더군요.

의사당은 원래 렝팡이 설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는 모든 디자인이 머릿속에 있다며 도면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렝팡은 대통령 워싱턴 직속의 ‘수도건설위원회’의 지시까지 거부하다가 결국 1792년 프랑스로 돌아가 버립니다.

당시 국무장관 제퍼슨은 500달러의 상금과 땅을 내걸고 의사당 설계 공모전을 개최했지만 17개의 응모작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는군요. 이 와중에 느닷없이 영국령 서인도 제도에 살고 있던 윌리엄 손튼이란 의사가 뒤늦게 응모를 하는데, 결국 이 안이 1793년 7월에 채택됩니다. 이 공사의 감독은 백악관을 설계한 제임스 호번이 맡았고요.

도중에 자금이 모자라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돈을 구한 다음 원래 설계에 있던 일부를 없애고 간신히 1811년에 완공을 하지만, 1814년 영국군이 불을 지르는 바람에 일부만 남기고 잿더미로 변해버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1826년 완공된 의사당 건물은 여러 차례의 확장을 통해 1970년경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지요.

전제 왕정에 대한 반발에서 싹튼 시민정신이 혁명으로 이어지고, 대표자를 뽑아 민의를 국정에 반영해 나가는 과정을 몇 백년에 걸쳐 발전시켜 온 선진국과는 달리, 한국은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세습 왕조가 붕괴되었고 60년 전 미국에 의해 독립을 맞으면서 민주주의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였습니다. 불과 몇십년 만에 후다닥 해치우다 보니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많고, 반목과 갈등이 당연히 클 수밖에 없겠지요.

하얀 집 두 곳을 돌아보며, 이제 좀더 발전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힘과 뜻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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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퍼홀릭스 패러다이스

‘5번가’로 알려진 뉴욕의 Fifth Ave.를 지나면, 먼저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의 수에 놀라게 됩니다. 차가 다니는 길도 편도 3차로 정도로 비좁기 때문에 몹시 혼잡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빈틈없이 들어선 높은 빌딩이 가도가도 이어져 있다는 것은 다른 도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입니다. 게다가 그런 건물들이 거의 예외없이 세상의 온갖 고급품을 파는 가게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면,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구경거리가 늘어나지요.흔히들 ‘명품’이라 부르는 브랜드는 이 거리에 다 몰려 있습니다. 그 규모나 고객의 수를 대충 헤아려 보니 파리보다 훨씬 크고 많은 듯 하더군요. 물론 일부 브랜드는 파리 본점에서만 판매하는 제품도 내놓지만, 세계의 돈과 사람이 뉴욕으로 몰려드는 걸 감안하면 명품 브랜드 회사에 있어서 뉴욕이란 곳은 일종의 ‘빅리그’인 셈이겠지요.

대부분의 고급 브랜드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태생입니다. 여행용 가방을 만들어 명성을 얻기 시작한 루이 뷔통이나, 옥죄는 신발로부터 헐리웃 스타들의 발을 해방시켜 준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판매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토종 브랜드도 종종 눈에 띕니다.

이런 브랜드 샵 외에도 이 거리에는 백화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1858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메이시스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블루밍데일스도 빠질 수 없지요. 건물부터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기지 않습니까. 지금 저기서 물건을 고르는 사람들의 할머니도 그 나이에 똑같은 장소에서 쇼핑을 즐겼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일본 백화점 타카시마야도 뉴욕에 점포가 있습니다.

요즘 럭셔리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백화점 가운데 하나는 Saks Fifth입니다. 주변에 물어보니 어지간한 여성분들은 다 알고 계시더군요.

이같은 인기 덕분에, 고급 의류와 화장품 위주의 패션백화점인 Saks Fifth는 이제 미국 어지간한 도시마다 점포가 다 있습니다. 몇년 전에 위노나 나이더가 옷을 훔치다 붙잡힌 곳도 이 백화점의 LA쪽 지점이었지요.

이 백화점의 내부장식이 그다지 특별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수함이 가득할 정도였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꽤 많이 찾더군요. 특히 화장품 코너에는 동양인 여성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거리에는 이런 곳도 있습니다.

이 거리를 걸을 때는 특히 조심할 일입니다. 혹시나 지름신의 내림을 받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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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시티의 여름날

워싱턴 DC에 학회가 있어 갔다가 짬을 내어 오션 시티라는 해변에 들렀습니다. 메릴랜드 주에 있는 길다란 섬 모양의 오션 시티에는 길이가 무려 16km나 되는 해변이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모래가 고운 데다 폭도 꽤 넓어 그야말로 환상적이더군요. 차로 3시간 정도를 달렸지만, 해변을 보는 순간 모든 피로가 사라질 정도로 멋진 곳이었습니다.

미국 동남부에는 허리케인이 몰아쳐 사망자 수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제가 머문 동북부 지역에는 빗방울을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날씨가 좋았습니다.

가는 도중 체서픽만을 가로지르는 체서픽 베이브리지를 건넜습니다. 총 길이가 27km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더군요.

마침내 해변에 도착! 휴가철의 막판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 더욱 좋았습니다.

말이 필요없는 해변의 절경.

해변이 시작되는 곳에는 거리에 나무판을 깔아두었습니다. 해변의 전체에 호텔이 가득 들어서 있어 휴양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더군요.

끝으로… ^^

myB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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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번째 구사절

신나는 시간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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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웨이 모놀로그

1863년 런던에서 처음 생긴 지하철은 19세기 말 유럽 대륙으로 전파되었고, 1927년 토쿄에 개통되면서 아시아에도 도입되었지요.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나 어지간한 도시에는 교통혼잡을 줄이기 위해 지하철이 다니고 있습니다.미국에는 1901년 보스턴에 처음으로 지하철이 뚫렸습니다. 지금은 광역통근전철이 근교를 담당하고, 이 짤막한 열차는 T라는 이름으로 지상과 지하를 누비며 시내를 돌아다니지요. 보스턴의 지하철은 장구한 역사를 웅변합니다. 낡아서 칠이 벗겨지고 물이 새는 역 구내에는 조명도 대충 형식적으로 달려 있어서 몹시 어두운 데다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마저 들지요. 그래도 계속 개보수를 한 덕분에 좁으나마 에스컬레이터도 있고 선풍기도 돌아갑니다. 역사에 냉방이 되지 않아 무더운 편입니다.

탈 때는 토큰이나 카드를 내고 들어가는데, 보통 역 입구가 행선지별로 다르게 나 있고 일단 한 번 들어가면 반대 방향으로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행선지에 따라 열차에 탄 다음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무료로 가는 구간도 있더군요.

열차가 온다고 방송을 해 주거나 전광판으로 알려주지는 않기 때문에 들어오는 걸 보고 직접 확인하지요. 보스턴의 지하철은 플랫폼이란 게 따로 없고 그냥 선로 옆에 승강장만 마련해 둔 식이라 좀 위험해 보이더군요. 작은 역에는 역무원이 상주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여기에는 공익근무요원이 없습니다.

열차 내부는 밝고 편안한 편입니다. 그런데 어지간한 미국 기차가 그러하듯이, 열차는 역시 일본에서 만든 것이더군요.

수도 워싱턴 DC의 지하철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1952년에 시작되었지만 1969년이 되어서야 착공이 이루어졌고, 결국 서울보다 늦은 1976년에 개통이 되었다는군요. 그 덕분인지 동부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워싱턴 DC지하철은 상당히 현대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역사 내부도 넓고 아늑하며, 차량도 길지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갖출 것을 다 갖추다 보니, 워싱턴 DC지하철은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동 안내방송까지 나오는 근사한 열차 내부와는 달리 역은 상당히 어둡더군요.

미국 건국 당시 수도였던 필라델피아에는 1928년부터 지하철이 다니기 시작했다는군요. 지금은 보스턴의 T와 비슷한 트롤리와 함께 구역을 나누어 운행 중입니다. 지하철은 깨끗하고 편리하지만, 역시 입구를 잘못 들어가면 엉뚱한 방향으로 열차를 타게 되더군요. 지상의 출입구에도 아무런 방향표시가 없고, 토큰 매표소 위에 붙은 EASTBOUND란 작은 종이가 유일한 안내라 당황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트롤리는 지상에서 전차처럼 도로를 달리다가 터널이 나타나면 지하철로 변신합니다. 열차의 모습은 보스턴과 거의 똑같지요. 다만 플랫폼에 조금 더 신경을 쓴 흔적이 보였습니다.

트롤리의 열차 내부는 깨끗하더군요. 재미있는 건 버스처럼 줄을 잡아당겨 내릴 곳을 알려야 한다는 점이지요. 차량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지하철 하면 뉴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000km이 넘는 어마어마한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는 점을 비롯해서, 그래피티와 범죄 등으로도 널리 알려진 뉴욕의 명소이지요. 1904년 개통되어 100년이 넘은 뉴욕지하철은, 최근 청소와 순찰을 강화해서 몰라보게 깨끗하고 안전해졌다고 합니다만, 미국에서 발간된 여행책자를 보아도 밤에 혼자 타지 말라는 얘기가 나와 있을 정도이니 여전히 주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테러예방 조치 때문에 검문이 까다로워졌더군요.

별다른 장식이 없는 길다란 통로는 파리지하철과 비슷한 분위기더군요.

역사 내부는 몹시 무덥고 영화에서 자주 보던 독특한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열차에 오르니 온갖 인종이 다 모여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가로로 길게 놓인 좌석이 놓여 있더군요. 그래피티 같은 걸 기대했지만, 아주 깨끗해서 놀랐습니다. 일부 차량에는 전광판도 보이더군요.

문이 닫히지 못하게 막는 사람들이 꽤 있는지 이런 경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뉴욕지하철에는 간혹 이런 ‘보급형 스크린도어’와 함께 열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을 좁혀주는 장치가 설치된 역이 있더군요. 그리고 열차 중간에 차장이 앉아 있습니다. 미국여행 가이드북에 보면 어지간하면 이 차장이 타고 있는 칸을 이용하라고 하는데, 졸고 있는 차장이 가끔 보이더군요.

그리고 어떤 구간에서는 도중에 열차를 끊어 일부만 종착역까지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방송을 해 주긴 하지만,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아 많은 여행자들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불안해 하더군요. 온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뒤섞인 도시답게 안내문도 여러 나라 글로 되어 있습니다.

일본인보다 4배나 많은 한국인이 거주하는 뉴욕의 지하철 안내문에 한글이 없어 서운하시다면, 커다란 한글 인사말이 반겨 주는 샌 프란시스코의 광역전철 Bart를 타 보세요.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미국 서부의 대도시에는 대부분 훨씬 깨끗하고 쾌적한 지하철이 갖춰져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올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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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꼭대기에서

뉴욕 맨해튼의 34th street를 따라 차를 몰고 가다 보면, 우뚝 솟은 엠파이어 스테잇 빌딩이 눈에 들어옵니다. 1930년 지어진 이 초대형 건물은, 당시 대공황으로 잔뜩 움츠려 있던 미국인들에게 일자리는 물론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고 합니다. 흔히들 높다란 건물을 가리켜 ‘마천루(摩天樓)’라고 하는데, 영어의 skyscraper와 같이 하늘을 긁어대는 집이란 뜻이니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이 빌딩은 GM의 창업자 제이콥 래스콥이 크라이슬러와의 사옥 경쟁에서도 이기기 위해 당시 세계 최고의 높이인 443.2m로 쌓아올렸습니다. 꼭대기인 102층에는 TV 중계탑이 있고 전망대는 320m 높이인 86층에 있지요.

가까이 가 보면 정말 높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빌딩을 둘러싸고 있는 33rd, 34th street과 5th avenue에 모두 5개의 출입구가 있습니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면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에 나왔던 익숙한 장면이 펼쳐지지요.

입장료는 14달러. 하지만 매표소까지 가는 데만도 30분 이상 기다려야 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얘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죠.

표를 사고 나면 보이지 않던 길로 들어가 또 한참을 줄서야 합니다. 나중에는 다리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엘리베이터 근처부터는 촬영을 못하게 하더군요.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귀가 멍멍합니다. 이 빌딩에는 모두 73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다더군요. 그런데 전망대까지 가려면 또 오래 기다려 엘리베이터를 갈아타야 합니다.

마침내 전망대 도착. 이 빌딩의 꼭대기에 위치한 TV 중계탑입니다. 저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땅 한번 밟는 게 쉽지 않겠지요.

하루종일 도시를 비추던 태양이 저물어 가고, 불빛이 땅을 메꾸어 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여러 생각이 오갑니다. 아주 오래 전 느꼈던 감정부터 조금 전의 느낌까지…
비록 사람들이 뿜어올린 매연으로 뿌옇게 변해버린 공기가 시야를 가로막지만, 이 커다란 도시의 밤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저 아래 세상의 거리에는 여전히 차와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저 귀퉁이 어딘가에 있었던 스스로의 모습은 망각한 채, 도시의 밤거리만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밤의 흑막이 완전히 세상을 덮었습니다. 지금, 이 도시는 빛으로 반짝이고 있습니다.

꼭대기에도 역시 밤은 찾아들었습니다.

뉴욕의 밤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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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는 없다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 기념공원에 다녀왔습니다. 포토맥 강변을 따라 링컨 기념관을 비롯해 여러 군데 볼거리가 있는데, 그 길 도중에 있더군요.기념 조형물입니다. 병사들이 판초우의를 입고 전진하는 모습입니다. 서 있는 병사들의 표정이 좀 멍청해 보이는 게 흠이지만, 한국 현대사를 비롯해 지금까지도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이 앞에 가면 숙연해집니다. 이 조형물은 승리를 상징하는 V자형으로 행군하는 19명의 병사들(육군 14명, 해병 3명, 해군특공대 1명, 공군관측병 1명)의 동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파병한 나라들을 규모 순서대로 새겨 두었습니다. 미국, 영국 다음으로 터키가 보이더군요. 혹시 참전 16개국(의료지원 5개국)을 알고 계십니까?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벨기에,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그리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태국, 터키, 필리핀이 파병했고, 덴마크, 인도, 이탈리아, 노르웨이, 스웨덴에서 의료진을 보내왔습니다.

미군과 UN군의 희생자 숫자가 적힌 곳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젊은이가 이 땅에서 쓰러져 갔더군요. 예전에 부산에 있는 UN묘지에 가본 적이 있는데, 새삼 숙연해졌습니다.


사망:  54,246(미군)   628,833(UN군)
실종:   8,177(미군)   470,267(UN군)
포로:   7,140(미군)    92,970(UN군)
부상: 103,284(미군) 1,064,453(UN군)

조형물 앞에 새겨진 글입니다. ‘알지 못했던 나라,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조국의 부름에 응해 참전한 아들과 딸들을 기린다’는 내용이지요.

공원의 벽입니다. 참전용사들의 얼굴 2천 4백여 개가 화강암 벽에 새겨져 있는데, 19개의 동상이 이 벽에 비쳐 38선을 상징하는 38개로 보입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문구가 있는 공원의 끝. 사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자유를 갖기 위한 투쟁으로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프랑스도, 영국도, 그리고 미국도… 오늘날 민주주의가 발전해 있다는 나라들은 모두 자유를 갖기 위해 치열한 전쟁이나 내전을 남들보다 훨씬 먼저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쟁취한 소중한 자유를 목숨걸고 지켜 왔고요.

자유의 중요함을 잊고 우습게 여기면, 혹독한 핍박과 시련은 반드시 다시 찾아옵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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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파티

실험실 옆자리 대니얼은 몇달 전부터 일본인 여친 치구사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키나와에 살다 베이비시터로 비자를 받아 1년 정도 와 있다고 하더군요. 알고보니 한국, 일본뿐만 아니라 동남아 국가 출신도 이런 방법으로 미국생활을 체험하는 젊은 여성들이 많더군요. 보통 호스트 집에 머물면서, 같이 생활하고 애를 봐주며 미국문화와 영어를 배우고 돌아가는 게 목적인 것 같습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이런 식의 비자를 알선해 주는 업체가 꽤 많은 듯하고, 베이비시터는 비자를 얻기가 상대적으로 쉽다더군요.오늘의 주인공 커플은 그동안 불꽃같은 시간을 보내 왔습니다. 자주 여행도 다니고, 시간만 나면 전화를 하는 데다 거의 매일 만날 정도니까요. 그런데 일본인 여친이 돌아갈 때가 되어 결국 친구들을 불러 이별파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슬프기 그지없는 상황이지만, 분위기는 내내 밝더군요.

장소는 피츠버그 북쪽의 노스 파크. 이번에 처음 가 보았는데, 넓은 공원에는 보트장, 아이스링크를 비롯해서 꽤 시설이 많더군요. 호수 주변의 잔디밭에서 바비큐 파티를 벌일 수 있는, 일종의 오두막인 ‘셸터’를 빌렸습니다.

시간이 되어 슬슬 초대받은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테이블 위에 종이를 깔고 음식을 준비하는 중. 많은 일본인이 왔더군요.

오늘의 주인공 대니얼과 치구사.

사람들이 모이고 음식을 신나게 먹기 먹기 시작합니다.

한참 먹고 나서의 모습.

슬슬 쉬고 나서 다시 먹자판이 시작되었습니다.

파리가 좀 보여 슬슬 쫓아냈더니 마구 물더군요. 따가운 데다 부어오르기까지 했는데, 이런 파리는 생전 처음입니다.

일본인들은 전통적인 소풍놀이인 수박깨기를 시작.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두 사람. 어쨌든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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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스퀘어의 낮과 밤

세계의 수도라는 뉴욕, 그리고 뉴욕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라는 타임 스퀘어.

일찌기 새천년이 열리던 밤, 온 세상의 모든 이목이 쏠렸던 장소.

그 자리에 서다.

뉴욕의 밤은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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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게요리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큰 데다 대서양과 태평양 모두에 접하고 있다 보니 지방마다 가지고 있는 특색이 서로 많이 다른 데 놀라게 됩니다. 중국이나 많은 섬으로 구성된 나라처럼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일은 없지만, 기후나 지형이 워낙 다르다 보니 살아가는 방식도 그만큼 차이를 보이는 것이겠지요.

얼마전 동부 여행길에 게요리를 맛보기 위해 볼티모어에 들렀습니다. 대서양 연안의 뉴잉글랜드 지방에서는 한여름에 게가 한창 잡힙니다. 블루 크랩이라고 하는, 껍질이 딱딱한 종류인데 이 시기에 탈피를 하기 때문에 부드러워진 상태가 되어 인기가 있는 것이지요. 게로 유명한 도시들은 크랩 페스티벌을 열어 각지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으기도 하고요. 몇몇 유명한 요릿집은 예약을 해 두지 않으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가 있습니다.

반면 태평양 쪽의 샌 프란시스코에 가 보면 정반대로 한겨울이 그야말로 ‘게철’입니다. 이 지역에서 잡히는 게는 던저니스 크랩이라고 하는, 붉은 색을 띠는 종류입니다. 역시 축제도 열리고 게맛을 보러 인파가 몰려들지요. 물론 캘리포니아 해안 지방은 12월이나 1월이라 해도, 비만 자주 내릴 뿐 폭설이 쏟아진다거나 찬바람이 불어 온몸을 칭칭 감고 다녀야 할 만큼 추운 날씨는 아니기 때문에, 두터운 스웨터 정도를 걸치면 겨울밤에도 돌아다니는 데 별 무리가 없습니다. 샌 프란시스코에서 맛본 게 요리 몇 가지를 보여드리지요.

볼티모어에서 들렀던 게요릿집, L.P. Steamers입니다.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데다 가게의 외관도 허름해서 찾고 나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여기가 과연 괜찮은 음식점인가’ 싶은 의혹이 생기지만,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언론에서 최고의 게요릿집으로 극찬한 곳이더군요.

들어가면 역시 평범하기 이를데없습니다. 비좁은 가게 안에는 벌써 자리를 잡은 손님들이 게를 뜯느라 여념이 없더군요.

인테리어라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낡은 장식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귀퉁이에 붙어있는 세계지도가 이 가게의 지명도를 웅변합니다. 미국내의 각 지역과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손님들이 출신지에다 핀을 꽂아두고 자국의 화폐도 붙여 두었더군요.

게의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어지간하면 가장 큰 걸로 시키는 게 좋습니다. 12마리가 기본 단위로, 몇 마리씩 주문하게 되면 단가가 올라가더군요. 이날 가장 큰 건 이미 다 팔렸고, 두 번째로 큰 녀석들은 12마리에 70불 정도였습니다. 이 정도면 남자 2~3명이서 먹기에 알맞은 양이더군요. 주문을 하면 누런 크래프트 페이퍼를 식탁에 깐 다음 에이프런과 나무망치(mallet), 그리고 칼을 올려 둡니다. 식사용 도구 치고는 상당히 우악스럽지요.

한참 기다리면 마침내 오늘의 일용할 양식들이 나타나 식탁 위에 쏟아집니다. 양념이 되어 있는 물에 삶은 다음 그대로 뜯어 먹는 샌 프란시스코 스타일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게껍질 위에다 가루양념을 부어 줍니다. 손가락으로 조금 찍어 맛을 보면 라면 수프하고 비슷한데, 이걸 만지던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하면 몹시 고통스러우니 조심해야 합니다.

조금 기다리면 ‘숙달된 조교’가 등장해서 어떻게 먹는지 시범을 보여 줍니다.

자, 이제 신나게 먹어 볼까요. 먹기전에 한컷.

먹는 동안 식탁 위에는 처절하다고 해야 할 만큼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삼가 게의 명복을 빌며…

주인 아줌마와 함께.

여기서 잠깐, 먹는 방법을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L.P. Stamers 홈페이지 발췌).

1. 집게발을 떼어냅니다.

2. 나머지 다리도 다 떼어냅니다.

3. 아래쪽의 게딱지(apron)를 떼어냅니다.

4. 게껍질을 열고

5. 내장을 걷어냅니다.

6. 이제 반으로 쪼개어

7. 드디어 먹는 것만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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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네

벌판에서 비를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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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커먼

보스턴 커먼은 1634년 미국 최초로 생긴 공원이라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17세기는 식민지 미국으로의 이주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이미 그 시절에 하버드가 설립되었고 이런 공원까지 생겨났다니 놀랄 수밖에.

보스턴은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살만한 도시이지만, 특히 이런 공원이 있어서 더욱 좋은 듯하다. 아침 일찍 찾은 공원은 도심 한가운데에 있음에도 정적까지 감돌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공원 안에는 작은 호수와 그 위에 놓인 다리가 있다. 오리떼가 막 잠에서 깨어나 두리번거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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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모으다

LOVE…

내가 본 첫번째 LOVE는 토쿄 신주쿠의 어느 빌딩 앞에 있었다. 이곳은 온통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오가는, 그야말로 빌딩 숲의 한가운데다. 각박한 삶 속에서 그나마 잠깐 사랑을 생각해 보라는 의미에서 세운 것이었을까…

필라델피아 시청앞에서 LOVE를 두번째로 마주쳤다. 한때 관광안내소가 있던 건물이 폐쇄된 채 덩그러니 남아 있는 작은 광장에서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노숙자들이 아침을 멍하니 맞고 있었다. 분수는 물을 뿜고 있었고, 나는 이 공간에서 어떤 사랑을 느껴야 하는지 한참 생각했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세번째 LOVE와의 만남은 ‘유펜’이라 불리는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정이었다. 어딜 둘러보나 역사와 전통이 넘쳐 흐르는 학교에서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여전히 젊음은 맥박치고 사랑한다는 걸 알리기 위한 것이었을까.

앞으로 또 어디서 LOVE를 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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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램 차우더

뉴욕을 출발한 다음 보스턴으로 올라가 맛본 클램 차우더.
클램 차우더는 보스턴을 포함한 뉴잉글랜드 바닷가에서 탄생했다는 수프다. 한국에 있을 때는 청담동 시즐러에 갈 때마다 몇 그릇씩 퍼먹곤 했는데, 시즐러의 항아리에 담긴 건 생각보다 좀 짰던 기억.

백합조개(clam)과 감자를 넣고 우유, 소금, 후추 등으로 맛을 낸 이 잡탕(chowder)은 이제 어딜 가나 맛볼 수 있고, 어지간한 미국 바닷가엔 이걸 파는 곳이 늘어서 있다.

샌 프란시스코의 피셔맨스 워프에는 특이하게 커다란 빵의 속을 도려내고 클램 차우더를 잔뜩 부어주는 스타일이었는데, 오리지널이라 할 수 있는 보스턴에서는 점잖은 접시에 담겨 나온다.

이번에 들른 리걸 시푸드(legal seafood)란 음식점은 보스턴 근방에서 어패류를 팔다 식당을 냈는데, 장사가 잘 되어 지금은 점포만 해도 스무 군데가 넘을 정도다.

가게 바깥에는 간판 대신 거대한 생선뼈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하도 인기가 있다는 말에 예약을 하고 갔는데, 무작정 갔더라면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정도.

저녁 7시가 넘어가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꾸역꾸역 몰려든다.

마침내 메뉴에서 클램 차우더 발견!
그런데 생각보다 스타일이 고급이라 이것저것 요리를 시키다 보니 둘이서 50불이 훌쩍 넘어간다.

짜잔. 겉으로는 평범을 넘어 단순해 보이지만, 조갯살 덩어리가 속속 숨어있다. 이곳의 클램 차우더는 우유맛이 아주 진한 게 특징. 미국음식 치고는 별로 짜지 않았다.

맛이 어떠냐면, 동생의 얼굴이 그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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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과의 대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어~

–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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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함께

닥터퀸 스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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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펜던스 에어

휴가를 맞아 동부를 다녀올 때 뉴욕까지 비행기를 탔다. 피츠버그에서 차로 10시간 남짓 달려야 하는 거리인데, 고속버스로는 12시간, 기차를 이용해도 만만찮게 걸리기 때문에 오가는 시간을 아껴 여행에 집중하려고 내린 결정.

그런데 피츠버그에서 뉴욕으로 가는 마땅한 항공편이 없었다. 유일하게 델타가 직항노선을 제공하는데, 꼭두새벽 아니면 한밤중이라 별수없이 다른 도시를 경유하는 걸로 찾다가 ‘저렴한 가격 290불에 모시는’ 인디펜던스 에어라는 항공사를 찾았다.

처음 들어보는 데라 못미덥기도 했지만, 싼 맛에 덜컥 표를 사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떠나는 아침.

공항에 나가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창밖 저만치서 기체가 나타났다.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오니 서 있던 직원이 얼른 고임목으로 비행기를 받쳤다.

타 보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보잉이나 에어버스 같은 고급기종이 아닌 탓인지 공항에서 표를 내고 나가면 허허벌판 활주로에서 직접 트랩을 올라 기내로 들어가는 식이다. 마치 예전에 대통령 동남아 순방한다고 일제히 보여주던 특집방송처럼 계단을 한칸한칸 올라가니 느낌이 색다르다. 그리고 고속버스처럼 짐을 비행기 바로 옆까지 가지고 가서 직접 동체 아래의 화물칸에 실은 다음 내릴 때도 직접 챙겨가기 때문에, 좀 우스워 보이긴 해도 빨리빨리 짐을 들고 떠날 수 있었다.

인디펜던스 에어라는 항공사는 워싱턴 DC에 거점을 두고 있어서인지 어디서 타든 일단 워싱턴에 내렸다가 갈아타는 방식이다. 그런데 워싱턴에 내리면 갈아탈 비행기가 바로 옆에 서 있기 때문에 환승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고.

하여간 뉴욕까지는 만족스럽게 갔다. 문제는 돌아올 때 벌어졌는데…

뉴욕 JFK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에 내려 피츠버그행을 갈아타려 기다리고 있는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오늘 워싱턴 공항 주변의 극심한 교통정체로 승무원 일부가 아직 출근을 못해 출발이 지연되고 있으니…”

서너 번의 안내방송 끝에 1시간 반이 지나서야 마침내 승무원이 도착했다며 출발하자고 한다.

기내에 들어가자 기장이 직접 객실로 나와서 미안하다며 그래도 스튜어디스가 늦게나마 왔으니 최선을 다해 한번 밟아 보겠단다.

비행기도 관광버스처럼 막 달려도 되는지 의아했지만, 아무튼 이륙하자마자 기장이 신나게 속도를 낸에 원래 1시간이 걸려야 할 피츠버그를 35분만에 그야말로 ‘날아 왔다.’

가격도 저렴하고 이것저것 편리한 점도 많지만, 글쎄…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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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과 팬

여름의 피츠버그는 무척 덥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습도가 몹시 높아 한국의 여름을 연상케 할 정도로 끈적거리는 날도 많기 때문에 여간해서 버텨내기가 힘들다.

처음 왔을 때에는 한국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강인한 정신력으로 뜨거운 여름을 이겨내 보려 했지만, 지내고 있는 집의 구조가 한쪽에만 창문이 있는 형태라 바람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해가 떠올라 공기가 데워지면 도통 빠져나가지를 않는다.

비단 이 집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방 한두개짜리 아파트라고 나와 있는 데를 여러 곳 가 보아도 별반 차이가 없다. 마치 호텔처럼 복도 양쪽으로 집이 나 있는 식이다.

결국 여름이 시작될 무렵, 에어컨을 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방세에 전기료며 수도, 가스요금이 모두 포함된 터라 별 부담 없이 실컷 쓸 수 있는 점도 ‘지름신’의 강림에 큰 기여를 했다.

마침 월마트에서 79불짜리 금성 에어컨을 발견했다. 한국서도 찾아보기 힘든 GoldStar 상표를 미국에서 볼 줄이야. 물론 창문에다 설치하는 식이지만, 어쨌든 낑낑대며 사들고 와서 한시간 동안의 사투 끝에 무사히 달았다.

벌써 석달째 쓰고 있는데, 성능은 그럭저럭 만족할 만하다. 바람의 방향을 전환하려 하면 막대가 안에 들어있는 팬을 때려대는 어이없는 문제점도 있긴 하지만.

다행히 이 집은 미국에서 보기 드문 천장조명에다 실링팬까지 갖춰져 있어서 아침에 학교로 갈 때 켜 두고 나가면 저녁에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반기는 시원한 공기가 참 좋다.

에어컨 아래에 있는 건 공기청정기 – 나름 웰빙 라이프를 누려 보려고 구입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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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ples

워싱턴 DC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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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벌써 떠나온 지도 열 달이 되었군요. 약속했던 한 해를 다 채워가고 있습니다.

경황없이 떠밀리듯 미국행 비행기를 타던 지난 가을, 휴대폰에 차곡차곡 쌓였던 메시지를 다시 읽어봅니다.

늘 고맙습니다. 제대로 인사도 못드렸지만…

돌아가면 꼭 인사드릴게요.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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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흔히 ‘유펜’이라고 부르는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 서점에서 팔고 있는 기념품 시계입니다. 세계 여러 곳의 시각을 알 수 있도록 도시 이름이 표기되어 있더군요.

숫자판 둘레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니 Tokyo와 함께 Seoul이 나와 있었습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이런 건 기대하기 힘들었겠지요. 1985년이면,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세계인들이 더 많던 시절이니까요.

반만년 역사라고 해도, 일본 식민지 시기를 지나 대한민국이 생긴 게 올해로 60년째니 이제 반 세기를 조금 넘긴 셈입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사건이 터지고 대립과 혼란을 거쳤지만 모두가 이를 악물고 피땀흘려 노력한 덕분에 여기까지 왔네요.

지금부터는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지요. 그동안 앞만을 보고 달리며 고만고만한 나라들을 추월해 왔다면, 이제는 그야말로 전통의 강호들과 힘겨운 한판승부를 벌여야 할 테니까요. 어쩌면 요즘 경제가 어렵다, 발전이 더디다고 많이들 힘들어하는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점을 나서며, 우리가 앞으로 더욱 치열하고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어,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토쿄보다 먼저 놓인 서울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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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현 등판경기 관전기


토요일 저녁(한국시각 일요일 오전)에 이곳 PNC 파크에서 벌어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콜로라도 록키스의 야구경기를 보고 왔습니다. 두 팀 모두 이름난 스타 플레이어가 없는 데다 빼어난 실력이나 좋은 성적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요. 특히 피츠버그에는 동양인 선수가 하나도 없거니와, 주로 경기를 갖는 상대팀에도 한국인 선수가 거의 없어 야구장을 자주 찾지 않게 됩니다. 스포츠 경기 관람은 열광적으로 어떤 팀이나 선수를 응원할 때 훨씬 재미있으니까요.

주말이라 경기장은 만원이었습니다. 피츠버그는 인구가 30만명이 좀 넘는 작은 도시인데도(주변 지역을 포함하면 좀 더 많습니다) 야구 열기가 뜨겁지요.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피츠버그의 선발투수가 상당히 잘 던지더군요. 1회초 콜로라도의 공격은 삼자범퇴.

마침내 김병현 선수의 등장. 올해 2승 7패를 기록중이니 두 달에 한번씩 승을 쌓은 셈이군요. 특유의 폼은 변함이 없습니다.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더니 연달아 얻어맞아 순식간에 2점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피츠버그의 대표선수 제이슨 베이의 2루타가 뼈아팠지요.

피츠버그의 홈구장 PNC 파크는 PNC 은행의 이름을 딴 곳으로, 경기장이 깨끗한 데다 뒤에 마농가헬라 강이 흐르고 있어 경치가 볼만합니다. 가끔 유람선도 지나가지요.

대충 3회가 끝나고 선물쏴주기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그새 경기장도 좀 청소하지요.

콜로라도의 반격. 이날 빈타에 허덕이는 바람에 6회까지 1안타로 막혔지요.

야구장의 볼거리. 솜사탕 장수와 앞자리의 쌍라이트.

4-1로 뒤진 상황인데 아직 불펜에서 몸을 푸는 구원투수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막간을 이용해 인형 쇼를 보여줍니다.

이때 갑자기 파도타기의 시작. 처음에 몇 번 실패를 하다가 결국 경기장을 다섯 바퀴나 돌았습니다. 잠실야구장에서 10년 전에 시작된 응원이 미국에까지 상륙하다니!
이 응원으로 관중석이 엄청 들떠서 경기가 잠깐 중단되었습니다.

또다시 청소시간. 이번에는 선물을 커다란 새총으로 쏘아줍니다.

콜로라도의 대반격. 3루를 가르는 안타로 4-3까지 따라붙었습니다.

관중석에서 어떤 청년이 가슴에 꽃을 달고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친구가 묶어준 꽃을 덜렁거리더니 저쪽에서 게 모자를 쓰고 고함을 지르던 아주머니의 응원도구를 받아 왔습니다.

다함께 몸을 푸는 시간. YMCA 노래에 맞춰 모두 신나게 흔들어요.

김병현 선수는 7회동안 4실점을 한 후 교체되었습니다. 이후 나온 투수가 만루 상황에서 밀어내기를 허용하는 바람에 5-3으로 차이가 더 벌어졌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

경기장 주변을 흐르는 강에는 홈런볼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배를 띄워놓고 기다립니다.

한밤중에도 야구장은 열기로 뜨겁습니다.

비록 3승도전에는 실패했지만, 재미있는 경기였습니다.

myB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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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의 세계로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실크스크린을 이용한 특이한 작품을 통해 널리 알려진 미술가입니다. 대표작 캠벨 수프 시리즈는 어지간한 미술 책자에는 다 실려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요.

처음 그 작품을 보고 강한 느낌을 받은 게 국민학생 때였으니까, 20년 만에 마침내 오리지널을 접한 셈입니다. 제가 연수중인 카네기멜론대학의 전신인 카네기대(CIT)를 졸업한 때문인지,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 카네기 재단 계열이어서 무료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 근처에 있는 다리 7가교(7th St. Bridge). 워홀의 얼굴이 다리 양쪽에 걸려 있습니다.


워홀 미술관 건물.


입구입니다.


자화상에 위장복(camo) 무늬를 덧씌운 작품. 이것 말고도 군복의 무늬를 입힌 게 꽤 보이더군요.


1층 로비에 붙은 작품.


이 미술관은 5층으로 올라가서 한층씩 내려오며 관람하는 방식입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계단.


자화상.

워홀은 미국 팝아트의 대표적인 인물로,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대량복제가 가능한 작품을 ‘생산’해 냈습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이 예술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한창 논쟁이 벌어진 적도 있었지요. 특히 어릴 때의 취미였던 연예인 사진 수집을 바탕으로 마릴린 먼로와 같은 배우들의 얼굴을 소재로 삼기도 했습니다.

캠벨 수프 캔이나 코카 콜라 등을 등장시켜 자본주의와 소비 문화를 상징하기도 했고, 상업영화를 제작한 적도 있습니다. 사진에 큰 흥미를 보인 적도 있고, 영화 ‘접속’의 삽입곡 ‘Pale blue eyes’를 부른 ‘Velvet underground’의 음악에 매료되어 직접 프로듀싱을 하기도 했고요. 이 그룹은 원래 동성애와 마약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바람에 이름 그대로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다가 그의 후원을 받으면서 인기가 급상승했다는군요.

워홀은 1987년 세상을 뜰 때까지 끊임없이 쇼킹한 이벤트와 주제를 발표해서 이목을 끌었지요. 한때 영화제작 제의를 거절하다 총에 맞기도 했고, ‘인터뷰’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게이로 알려진 워홀 주변에는 다양한 ‘연인’들이 항상 존재했는데, 굵은 펜으로 대충 그린듯한 형태의 작품으로 유명한 키스 헤이링이나 그래피티의 천재 장 미셸 바스키야도 포함되어 있지요.

그의 작품 가운데는 의외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것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의 모습은 보통 소년이나 다를 바가 없더군요.

종교문제를 가지고도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올려다 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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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도시

비가 오자 가뜩이나 우울한 도시의 기운이 더욱 무거워진다…

피츠버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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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8월 파리(Paris)의 밤하늘엔 온통 총성이 가득하다. 이 강가에 수두룩한 돌과 넘쳐나는 물은 그렇게나 험란했던 우리의 역사를 대변하고, 그것들은 이전 자유의 방책으로써 그렇게도 높이 쌓여온 것이다. 이전 무엇보다도 정의는 이제 인간의 피를 요구한다.

    우리는 이 싸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육체와 정신의 모든 힘을 이 투쟁에 쏟고 있기에, 쓰라림 없인 이 끔찍한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투쟁의 중요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홀로 난관을 극복해야만 되는 운명이지만, 그것을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사는 프랑스 국민이 결코 살인을 원치 않았으며, 그들이 선택의 여지없이 전쟁에 참여했던 그때에도 그들의 두손은 깨끗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거할 것이다. 그들의 이성은 그날 밤, 지난 2년간 전쟁이 쉽다고 생각해오던 무리들에게, 넘쳐나는 격분으로 갑자기 그리고 끊임없이 총을 움켜쥐고, 그들을 향한 증오의 총성을 울리게 하였음에 분명하다.

   그렇다, 그들의 이성은 압도되고 있었다. 그들은 넘쳐나는 큰 희망과 또 그렇게나 가득찬 반항 속에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조국을 먼 훗날 다른 이들이 우울하게 반추하는 것을 막고, 또한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였다. 프랑스가 내일 떳떳히 말할 수 있도록 오늘 파리는 싸우고 있다. 사람들은 오늘 밤 저마다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일의 조국과 정의를 간절히 염원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같은 일들이 전혀 가치없으며, 또한 성급하게도, ‘파리는 노고없이도 해방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모호한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이런 투쟁이 없었다면 계속 참아야만 할 많은 것들을 실제적으로 위협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이것은 더욱 분명해져야만 한다: 모든 혼란이 스스로 잠잠해질 것이란 낙관과 편하게 상상하기만을 좋아하는 안이한 생각이, 과거 우리의 자유를 억압해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끔찍한 고통은 혁명을 낳을 것이다.

   4년간 침묵속에서 투쟁해왔던 사람들을 향해, 누구도 감히 희망을 품진 못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온종일 폭음의 소음 안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은 총성이 가득한 가운데  적의 항복을 받아낼 것이고, 어떠한 환경하에서든 모든 부당함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것이다.

   이들을 향해 무엇도 기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 조국의 보배들 – 그들은 25년간 가장 뛰어나고 가장 순수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으며, 다시 그와 같은 일을 맡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조국을 침묵 안에서 사랑하는 일이었고, 그리고 소리없이 침략자의 우두머리를 증오하는 일이었다. 파리는 오늘밤 내일의 프랑스를 호령할 각오로 싸우고 있다.

   권력을 위해서가 아닌, 정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술책을 위해서가 아닌 윤리를 위해서; 프랑스의 지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프랑스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의 확신이란 그것이 `미래의 어느 때에 일어날게 될 것’이란 사실에 있지 아니하고, 고통과 투쟁의 집요함이 섞여있는 그 모든 일들이 오늘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이유로, 인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피와 분노에도 불구하고,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이들의 죽음과 쓰라린 상처 그리고 이 거친 총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해야만 한다. 후회의 소리가 아닌, 희망의 소리로, 스스로의 운명에 고립된 인간의 끔찍한 희망의 소리로, 이야기해야만 한다.

   이 거대한 파리(Paris), 온통 암흑과 열기로 뒤덮인 여름 밤, 우리의 머리위로 폭탄이 비처럼 쏟아지고, 거리거리마다 저격병들이 넘쳐나고 있는 파리, 한때 세계가 부러워했던 그 빛의 도시보다도, 오늘 우리에게 파리는 더 밝게 빛나고 있는 듯하다. 그곳엔 온통 희망과 고통의 광채만이 가득하고, 해방뿐이 아닌, 내일의 자유까지도 정의로운 용기의 불꽃과 열기속에 담겨 있다.

– 알베르 카뮈, 자유의 피. 1944년 8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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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50대도시 청결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발표한 미국 50대도시의 청결도.
대기/수질/산업공해/유독성 폐기물/위생 및 재활용 등의 항목마다 50점 만점으로 점수를 내어 계산했다는데, 피츠버그는 48위.
이렇게 더럽다니!



Portland


Buffalo


Columbus

   
NAME Air Water Toxics Hazardous
Waste
Sanitation Total
Portland (OR) 49 50 35 32 43 44.00
San Jose 41 50 50 21 32 40.71
Buffalo 34 50 27 26 47 38.29
Columbus 24 50 31 45 NA 37.33
San Francisco 47 50 34 16 12 36.57
Denver 27 50 44 19 NA 36.17
Rochester (NY) 46 32 32 43 19 35.71
Austin 44 9 48 50 NA 34.00
Orlando 48 23 9 38 48 33.86
San Diego 13 50 46 42 14 32.57
Hartford 32 29 47 9 44 31.71
Sacramento 4 50 49 40 24 31.57
Las Vegas 12 50 40 49 7 31.43
San Antonio 42 18 42 47 8 31.00
Oklahoma City 43 1 45 41 40 30.57
Minneapolis 33 30 21 35 31 30.43
Indianapolis 23 31 33 44 27 30.29
Salt Lake City 26 50 2 14 42 30.00
Jacksonville 45 24 19 20 NA 29.50
Charlotte 28 34 22 27 28 28.71
Virginia Beach 35 17 29 33 30 28.00
Cincinnati 19 35 11 38 34 27.29
Nashville 30 14 18 46 38 27.14
Riverside (CA) 1 50 43 25 15 26.43
New Orleans 39 13 10 48 21 26.14
Milwaukee 37 10 38 38 10 25.71
Seattle 36 21 37 15 13 25.57
Baltimore 16 33 14 24 41 25.29
Miami 50 11 36 8 9 25.00
Dallas 20 28 30 31 16 24.71
Tampa 40 3 17 17 50 24.29
Memphis 22 12 24 29 46 23.86
Providence 39 8 41 7 22 23.43
Louisville 21 15 15 39 35 23.00
Washington (DC) 25 19 12 13 45 22.57
Phoenix 17 37 1 22 23 22.00
Detroit 10 27 20 10 49 21.86
Richmond 31 4 13 34 36 21.86
Cleveland 9 25 26 31 26 21.57
Atlanta 15 26 4 11 39 19.43
Houston 7 39 3 19 20 19.14
Los Angeles 2 38 28 3 17 18.29
Boston 29 7 39 5 11 18.14
Philadelphia 14 22 16 2 37 18.14
Kansas City 19 16 25 13 NA 18.00
Birmingham 8 20 8 28 33 17.86
St. Louis 5 36 6 6 25 17.00
Pittsburgh 6 5 5 23 29 11.29
New York 11 2 23 1 NA 8.33
Chicago 3 6 7 4 18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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