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덴버

미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기 전, 잠깐 시간이 생겨 여행을 떠날 작정을 했습니다.

동부와 서부의 어지간한 곳은 다 가 보았으니,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남쪽 지방 유람을 하려고 벼르고 있었지요. 여러 개의 섬이 다리로 이어져 있다는 플로리다의 키 웨스트, 재즈의 고향 뉴 올리언즈, 그리고 카우보이의 정취가 가득한 텍사스를 목적지로 잡았습니다.

그런데 플로리다와 루이지애나는 허리케인 캐트리나의 대습격으로 쑥대밭이 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접었지요. 결국 텍사스행을 결정하고 항공권까지 모두 구입해 두었습니다. 더군다나 텍사스에는 유치원 때부터 20년 넘게 지내 온 친구가 유학중이라 오래간만에 볼 수 있어 무척 기대가 되더군요. 친구는 공부하느라 바쁠 텐데도, 호텔 예약까지 마쳐 두어 무척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셈인지 초대형 허리케인 리타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진로를 텍사스로 정확히 맞추더군요. 출발하기로 한 날 새벽까지 공항에 갈까말까 고민하다 결국 귀국에 영향을 줄까봐 여행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아쉽던지요. 리타는 별 피해 없이 스멀스멀 사라졌고, 텍사스에 가 보지 못한 안타까움은 아직도 무척 큽니다.

결국 사촌누나 부부가 있는 덴버로 방향을 바꾸어 마지막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전에도 한 번 가 본 곳이긴 하지만, 가을의 덴버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록키산맥에 단풍이 시작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지요.

출발날짜 직전에 급히 표를 구하다 보니 어메리카 웨스트 항공이라는 회사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저가 항공사인데, 설립된 지 20년이 넘었으니 나름대로 역사가 있는 회사입니다. 진작부터 부도상태이던 유나이티드와 US 에어웨이스에 이어 얼마 전 노스웨스트와 델타까지 모두 부도의 길을 걷게 된 최근의 상황에서 잘 버티고 있더군요. 마침 이날, 어메리카 웨스트 항공이 US 에어웨이스를 인수하게 되어 안내방송이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어메리카 웨스트 항공은 네바다주의 라스 베이거스를 본거지로 한 회사라 대부분의 항공편이 라스 베이거스를 거쳤다 가게 됩니다. 세계 도박의 중심지답게, 공항 내부에도 어딜 가나 슬롯 머신이 설치되어 있더군요.

길에는 추워지는 날씨를 피해 아래로 내려온 엘크 무리들이 어슬렁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산은 조금씩 가을빛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곡류를 뒤로 두고 높이 올라가 보았습니다. 침엽수림이 빽빽하더군요.

정상에 다다르자 곳곳에 얼음이 보였습니다. 식물조차 살기 힘든 척박한 곳이더군요.

아름다웠던 그곳, 언제 다시 가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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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Comment

  1. 누나
    Posted November 3, 2005 at 4:27 am | Permalink

    사진 잘 감상했어.
    니가 왔을땐 막 물이 들려는 중이었지?
    한 2주전쯤이 절정이어서 가족끼리 30분정도 거리에 있는 산으로 다녀왔단다.
    니가 있음 예쁜사진 많이 담아 갔을텐데…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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