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eu

세상의 일이란 어떤 것이든 간에 언젠가는 끝이 나게 마련입니다. 들어갈 때 절대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이던 고등학교나 군대에서의 몇 년도, 결국 시간의 흐름 앞에서 모두 과거지사로 변했지요. 학창시절 마지막 소풍날이나 오래전 그 사람과의 마지막 입맞춤처럼, 자각하지 못하는 시작과 끝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어느새 피츠버그에서 한 해를 꼬박 보냈습니다. 고마운 분들의 희생과 도움으로 미국행이 결정되던 때의 느낌이 여전한데, 벌써 다시 가을이군요. 피츠버그에 도착해 선배 집에서 막막한 미국생활을 시작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오자마자 갑자기 몰아닥친 이른 추위 때문에, 침대도 없이 바닥에서 덜덜 떨며 잠을 청하던 밤이 있었지요. 하나하나 세간살이를 갖춰 나가며 조금씩 적응하던 늦가을과,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던 눈에 지쳐가던 겨울도 떠오르는군요. 늘상 흐리고 눈비가 내리는 날씨는 왜그리 짜증스럽던지요. 새 집에서 봄과 여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피츠버그는 쉽게 정을 붙이기가 어려운 동네입니다. 특별히 가볼 만한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궂은 날씨도 사람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그 옛날 세계를 주름잡던 철강산업이 사라지고 난 다음, 나날이 위축되는 형편과 자연의 오염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 그리고 여기서 배운 것들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지요.

귀국을 보름쯤 앞두고, 포인트 스테잇 파크에 다녀왔습니다. 앨리게니강과 머농거힐러강이 만나 오하이오강이 생기는 곳에 자리한 공원이지요. 세 강이 만나는 곳에 자리잡은 피츠버그에는 다리가 많이 놓여 있습니다. 1965년 차관을 얻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곳을 둘러보며 포항제철과 한강교량 건설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이 곳은 18세기 중반, 프랑스와 영국군이 오하이오 계곡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싸운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1754년 프랑스군이 인디언과 함께 이곳을 점령하고 포트 듀퀘인이라는 요새를 세우자, 당시 버지니아의 영국군 지휘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탈환을 위해 공격을 감행했다 참패를 당한 곳이기도 하지요.

이듬해에는 조지 브래독 장군이 기습했다가 또한번 패배를 맛보았을 만큼, 당시 이곳은 프랑스의 세력이 아주 강했습니다. 결국 1758년 존 포브스 장군이 프랑스군을 물리치면서 영국군이 차지하게 되었다는군요. 지금도 피츠버그에는 듀퀘인, 브래독, 포브스라는 지명이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은 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1950년대 초반까지 슬럼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다 약 30년간의 설계와 공사를 거쳐 1974년 공원으로 탈바꿈했다는군요.

공원 안에는 잔디밭이 있어 눈을 시원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분수입니다. 1분에 3.8톤의 물을 45m 높이까지 쏘아올려 3개의 강을 상징하는 3개의 분수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건너편 워싱턴산에는 유명한 인클라인이 오르락내리락하지요.

강 건너편에는 풋볼팀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경기장인 하인즈 필드와 카네기 사이언스 센터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다운타운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몇 개 없는 지하철 역도 새롭게 보이더군요.

살아가면서 앞으로 다시 피츠버그를 방문할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행보가 어쩌면 죽는 날까지 이 도시에 남긴 마지막 발걸음이 될 수도 있겠지요.

매일 문을 열고 드나들던 현관, 얼마나 눌렀을지 모르는 엘리베이터의 버튼, 그리고 복도까지도, 모두 마지막이로군요. 낑낑대며 침대와 책상, 가재도구를 나르던 이삿날, 그리고 먹을거리를 잔뜩 사오던 주말도 이젠 모두 다시오지 않을 추억으로 담아야지요.

평생 잊지 못할 피츠버그에서의 생활이 끝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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