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의 세계로

앤디 워홀(Andy Warhol)은 실크스크린을 이용한 특이한 작품을 통해 널리 알려진 미술가입니다. 대표작 캠벨 수프 시리즈는 어지간한 미술 책자에는 다 실려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요.

처음 그 작품을 보고 강한 느낌을 받은 게 국민학생 때였으니까, 20년 만에 마침내 오리지널을 접한 셈입니다. 제가 연수중인 카네기멜론대학의 전신인 카네기대(CIT)를 졸업한 때문인지,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 카네기 재단 계열이어서 무료로 입장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 근처에 있는 다리 7가교(7th St. Bridge). 워홀의 얼굴이 다리 양쪽에 걸려 있습니다.


워홀 미술관 건물.


입구입니다.


자화상에 위장복(camo) 무늬를 덧씌운 작품. 이것 말고도 군복의 무늬를 입힌 게 꽤 보이더군요.


1층 로비에 붙은 작품.


이 미술관은 5층으로 올라가서 한층씩 내려오며 관람하는 방식입니다. 위에서 내려다 본 계단.


자화상.

워홀은 미국 팝아트의 대표적인 인물로, 실크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대량복제가 가능한 작품을 ‘생산’해 냈습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이 예술에 해당하는지를 놓고 한창 논쟁이 벌어진 적도 있었지요. 특히 어릴 때의 취미였던 연예인 사진 수집을 바탕으로 마릴린 먼로와 같은 배우들의 얼굴을 소재로 삼기도 했습니다.

캠벨 수프 캔이나 코카 콜라 등을 등장시켜 자본주의와 소비 문화를 상징하기도 했고, 상업영화를 제작한 적도 있습니다. 사진에 큰 흥미를 보인 적도 있고, 영화 ‘접속’의 삽입곡 ‘Pale blue eyes’를 부른 ‘Velvet underground’의 음악에 매료되어 직접 프로듀싱을 하기도 했고요. 이 그룹은 원래 동성애와 마약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바람에 이름 그대로 언더그라운드에 머물다가 그의 후원을 받으면서 인기가 급상승했다는군요.

워홀은 1987년 세상을 뜰 때까지 끊임없이 쇼킹한 이벤트와 주제를 발표해서 이목을 끌었지요. 한때 영화제작 제의를 거절하다 총에 맞기도 했고, ‘인터뷰’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게이로 알려진 워홀 주변에는 다양한 ‘연인’들이 항상 존재했는데, 굵은 펜으로 대충 그린듯한 형태의 작품으로 유명한 키스 헤이링이나 그래피티의 천재 장 미셸 바스키야도 포함되어 있지요.

그의 작품 가운데는 의외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것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의 모습은 보통 소년이나 다를 바가 없더군요.

종교문제를 가지고도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는데,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올려다 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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